2015. 5. 24. 18:37ㆍ★ 나와 세상
어렸을 때는 제사도 명절도 우리집에서 지냈다.
집안청소를 하고 음식 준비를 하느랴 바쁘게 움직이시던 할머니와 엄마가
심부름 한 가지만 시켜도 입을 댓자로 내밀던 철딱서니 없던 아이가 나였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셨다고 해서 내가 착한 손녀나 딸로는 살지 못했다.
또래에 비해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고 조금 우울함을 즐겼던 평범한 계집애였을 뿐,
속이 깊거나 총명한 아이는 전혀 아니었다.
그런 게으르고 속없던 아이가 마흔 여섯살이 된 2015년 5월에는
19년 전부터 해오던 경조사들을 치뤄내느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5월 1일, 고2인 큰아이 중간고사가 끝나고 중3인 작은아이와 함께 아이들의 단기방학이 있었다.
5월 2일, 고용보험에서 지원해주는 ** 학원 컴활 자격증반에 등록을 했고,
5월 4일, 구입한지 7년밖에 안된 냉장고 냉장 모터를 21만원이나 주고 새로 교체했다.
5월 6일, 시아버님 기일 하루 전이라 매년 해오던 제사 음식를 하느랴 하루를 보냈다.
5월 7일, 시아버님 제사를 위해 시댁에 도착해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올해는 시댁에서 일을 전혀 안한 것 같다.
5월 8일, 어버이날이라 친정과 시가에 으례적인 안부전화만 하고, 친정 새아버지 생신음식 준비를 하느랴 하루를 다 보냈다.
5월 9일, 새벽5시에 출발해 아침 9시에 친정 영암에 도착을 해서 1시간 일찍 내려온 큰 오빠와 함께 밭으로 향했다.
둘째 동생내외도 11시즘에 도착해서, 올해는 들깨 농사 밭고랑에 비닐을 씌우고 삽으로 흙으로 덮은 작업을
큰 오빠와, 내 남편, 제부 그리고 여동생과 아버지가 함께 할 수 있었다. -작년에도 나만 내려와서 일을 돕다가 세 고랑 겨우 하고
심한 두통과 메스꺼움 때문에 쉬었다가 다음 날 오전에 다시 했었다. (이제껏 늘 그래왔다. -나도 농사일 도와드린거 2,3년 밖에 안된다)
나와 엄마는 일하는 중간에 나와서 차를 끌고 읍내 방앗간에 가서 미숫가루와 들기름, 참기름, 그리고 가래떡 두 가지를 해왔다.
5월 10일 아침, 동생과 내가 준비해간 음식들로 아버지 생일상을 차려드리고(우리가 음식을 미리 준비해 가서 차려드린 건 처음)
아침밥을 먹고 쌀포대를 비롯한 온갖 먹거리들을 잔뜩 차에 싣고 아침 10시 30분경에 친정에서 출발했다.
아버지가 25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모판을 논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신다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보고 내려올 수 있냐고 물어 보셨다.
나머지 자식들에게는 전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라 말조차 꺼내시지도 않으신다.
자식 9명중에서 가장 일을 못하고, 가장 부실한 체력을 가진 자식이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이 나날이 농사일이 버거우신지 근래 몇 년사이에 부쩍 나를 자주 호출 하신다.
일당을 줘도 시골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라 그런다.
5월 11일부터 컴퓨터 학원에서 매일 5시간(09:30~14:30)
식사시간이 따로 없어서 쉬는 시간에 먹을 수 있는 김밥이나 과일을 매일 싸간다.
여기서도 등원시간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실력은 뒤에서 2번째인 것 같다. ^^*
집에 와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하는데도 엑셀 수업은 내게 쉽지 않다.
필기시험도 봐야해서 컴퓨터에 관한 시험문제도 일찍 했는데도
한 번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머리가 따라주지 않아서자주 한숨을 쉰다.
5월 17일은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기일이라 전 날 동생집에 도착해서 함께 제사준비를 했다.
고2인 큰 아이 중간고사 성적표를 토대로 다음 주 목요일즘에 담임선생님과 진로 상담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상속에서 같은 집에 살고 있는 내 동거남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는지 하루를 거르지 않고 술냄새를 풍기고 있다.
가끔은 미워서 이틀에 한 번씩 내리는 양파즙도 안 챙겨주고 싶지만
나날이 늙수레한 아저씨 모습으로 변해가는 남편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들어 울컥해질 때가 많다.
5월에는 제사와 생신이 몇 건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인 큰 아이 등록금을 납부하는 달이었다.
중간에 남편 지인늬 경조사도 두 건 있었다. 내심 학원을 끊길 바라는 엄마인 나는
몇 번이나 큰 아이에게 집에서 혼자 공부하길 권유했지만(좀 다툼) 결국은 내가 졌다.(소심한 큰 아이가 눈물만 뚝뚝 흘려서)
세월호 여파로 두 딸들 수학여행과 수련회가 모두 취소 되었고, 현장학습(당일치기, 근처 공원으로)으로 대체 되었다.
수학여행이 취소되어 속상해하는 딸 아이를 보면서 괜한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수학여행 경비도 만만치 않을거 같아서)
이 모든 일들을 챙기는데에는 돈이 지출되었다.
올해는 친정부모님 모판 옮기는 일을 못 도와드리게 되었다.
모판 나가는 날짜가 평일로 옮겨져서(27일과 29일로)
대신 큰 오빠의 큰 아들(21살, 휴학생-군대 갈려고)이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시골에 내려가서 일을
도와 드리기로 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제발 올해를 마지막으로 내년엔 정말로 부모님이 약속하신대로 농사일을 내놓으시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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