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20. 13:47ㆍ★ 나와 세상
운전을 한 시간 이상은 못한다.
뒷목이 뻣뻣해지고 눈은 뻑뻑해지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한 시간 운전하면 최소한 10분은 쉬어야 한다.
그래서 운전실력은 초보수준이다.
시골일도 논일이든 밭일이든 한 시간 이상은 못한다.
목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서 도저히 한 시간 이상은 할 수가 없다.
특히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친정집엘 내려가도 농사일에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한다.
주말에 1박 2일로 친정엘 다녀왔다.
허리가 'ㄱ'자가 되어가는 아버지를 보면 짠한 마음과 아울러 엄마의 고달픔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자식이 아홉, 모두가 농사일 더 이상 하시지 말고 있는 돈 쓰시라고 백번 말해도 소용 없다.(매달 자식들이 용돈을 거둬서 드린다고해도)
각자가 다 가정이 있는터라 서너시간 넘게 걸리는 시골집에 자주 못 내려가는 자식들 마음도 편치는 않다.
농사일에 큰 도움을 주길 바라시지는 않는다.
다만 나이 들어 늙고 힘 없는 부모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한 푼이라도 벌어 자식, 혹은 손자손녀들에게 먹거리와 용돈 정도를 주고 싶어하시는
엄마, 아빠의 고달픈 몸과 마음을 자식들이 알아주길 바라시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남편과 나, 태양빛이 조금 사그라질즘, 오후 5시경에 논둑길 잡초(풀)를 뽑는 일을 시작했다.
시골에 태어나 자랐음에도 난, 농사일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뿌리가 깊이 박혀 있는 논두렁 잡초들이 모가 심어져 있는 논 중앙으로 파고드는 걸 방지하는 작업이라고 하셨다.
쭈그리고 앉아 낫질을 한지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다리가 저리고 허리도 아팠다.
작업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힘이 들어서 논두렁에 주저 앉고만 싶었다.
허리가 부실한 남편, 메스꺼움으로 구역질이 나는 나,
하지만 잡초를 뽑고 낫질을 하며 전진하는 우리 부부 뒤로는
팔순 가까운 두 노인네가 눈두렁을 다지는 작업을 하고 계셨다.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힘들어서 미쳐 버릴 것 같았고,
왜 이렇게 힘든 농사일을 팔순 가까운 연세에도 하시려고 하는지 이해되지가 않아 화가 났다.
이제는 농사일을 완전히 접고 당신네들이 갖고 있는 돈으로 남은 여생, 편히 지내셨으면 좋겠다.
자식들에게 뭔가 물려줄 생각 하지 마시고 건강 챙기시면서 지내셨으면 한다.
부모님도 머리로는 자식들도 다 사정이 있고 먹고 사는 것에 바쁘다보니
주말이라도 쉬면서 이런 저런 일들로 못 내려온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서운해 하신다.
나날이 두 분의 건강이 안 좋아지시니 더더욱 그러신다.
도시 남자인 남편(두돌때 서울로 올라왔음)은 시골을 좋아한다. 시골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다.
맑은 공기가 좋다고 처가에 내려가는 걸 좋아한다.
되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시골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라면서 한 번도 농사일을 해 본적이 없음에도 노년을 시골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결혼후에 가끔씩 친정에 내려와 한 두번 농사일 거두는 일을 해본 후엔 더더욱 시골에서의 생활은 생각하기도 싫다.
게으르고 부실한 몸둥아리를 가진 나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논두렁 작업을 마치고 밤7시 반즘에 집에 도착해 씻었다.
저녁 밥상을 차려야 하는데 속쓰림과 울렁증으로 옴짝달싹을 못했다.
부실한 딸년을 둔 덕에 칠순 넘은 늙은 친정엄마가 대신 저녁상을 차려야 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마흔 여덟살 된 딸의 부실한 위를 걱정하며 올해가 가기전에
옻을 넣은 오리고기를 해줄테니 언제 한 번 꼭 내려오라고 당부하셨다.
엄마도 젊은 시절에 위가 안 좋아서 늘 속쓰림과 구역질 했는데
할머니가 해주신 옻을 넣은 오리고기를 먹고 난 뒤로 그런 증상이 싹 사라지셨다고 한다.
백년 손님인 사위인 남편에게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하셨다.
사위가 왔는데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허리 안 좋은 사위 일 시켜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속상하고 짜증도 났다.
난 20년동안 시가 일을 하면서, 시어머님에게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다음 날 아침 9시에 친정집에서 나섰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양수기로 물을 뿜으려는 친정아버지를 뒤로 하고
양파다 김치다 먹거리들만 잔뜩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추 수확할 7월에 한 번 더 내려오겠다는 내 말에 엄마 표정이 밝아지셨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본인 몸 건사하기도 힘드신 분들이 농사일을 놓지를 못하시는 건지 모르겠다.
내년에도 또 농사를 조금 지으시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귀전에 맴돈다. 한숨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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