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여자가 되고 싶다

2022. 7. 5. 14:32책,영화,전시회, 공연

여자는 살면서 한 번은 재수 없는 년이 된다. 중학교 때 선생님의 질문에 멋지게 대답했을 때 내 뒷자리 남자애가 비웃으며 말했다. "씨X, 재수 없게 나대네." 나는 튀지 않으려, 잘난 척 하지 않으려, 사람들과 둥글게 잘 지내려고 나름 노력했다. 그러나 함정이 너무 많았다. 여자는 공부를 잘해서, 공부를 못해서, 예뻐서, 못생겨서, 너무 여성스러워서, 여성스럽지 못해서자기 생각을 말해서,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아서 재수 없다고 욕을 먹었다. 욕먹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좁고 위태로워 나는 자주 나를 검열해야 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 이상한 기준을 만든 세상과 싸우는 대신 나는 그 길 밖의 여자들을 욕하는 걸 택하기로 했다. " 저 썅년은 뭔데 저렇게 나대지?"

 

<썅년의 미학>에는 내가 하고 싶었지만 삼켰던 말들이 적혀져 있다. 상대가 나를 미워할까 두려워서 차마 하지 못했던 행동들이 그려져 있다. 작가는 여자를 후려치는 수많은 손목을 붙잡고 꺼지라고 말한다. 그 모습이 시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나는 왜 이렇게 똑 부러지게 대처하지 못했을까?`생각했다. 서글퍼지려는 찰나에 작가의 응원이 들린다. 이 상황을 겪어야 했던 건 우리의 탓이 아니라고, 우리를 함부로 대했던 이들의 탓이라고 말이다. 썅년의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간들도, 썅년이라고 욕먹어야 했던 시간들도 우리의 탓은 아니다. 그러니 더 이상 자책하지 않겠다.

 

나는 앞으로 더 재수 없는 여자가 되고 싶다. 욕먹을까 움츠리고 살았던 지난 시간들의 몫까지 더 나대며 살고 싶다. 세상을 두 눈 치켜 뜨고 똑바로 바라보며, 자기 이야기 똑 부러지게 하는 건방진 여자들을 응원하고 사랑할 것이다.ㅠ누가 또 나에게 "씨X, 재수 없이 나대네"라고 욕하면 비스듬히 바라보며 한 번 피식 웃어줘야지.

아, 나도 어쩔 수 없는 썅년인가보다. 

                                                                                          ⟦나에게 다정한 하루 서늘한 여름밥 작가⟧

 

 

스물 세 살된 작은딸 책장에서 꺼내든 책이다. 웹툰책이다.

제목을 보니 기억이 났다. 2018년도즘 남양주 도서관 정리실에서 근무하던 시절 이용자가 신청한 희망도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던 책이라는 걸. 신간도서가 입고 되더 검수하던 과정에서 책제목을 읊을 때, 정리실 근무자들이 함께 웃었던 제목이다. 정작 도서관에서 책 작업을 할 땐 책 목록들을 확인하면서 요즘 사람들이 많은 찾는 책들이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는 있지만, 정작 그 책들을 읽어 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마크 작업을 보면서 청구기호 부여 하고 포장해서 문헌정보실과 어린이 자료실로 신간도서들을 이동하는 작업하는 시일 맟추기에 급급했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도서관 정리실에서의 그 작업들을 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오늘, 이 책을 집어 들었으니 최소한 3일안에는 다 읽도록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도 썅년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으면서 살아보도록 노력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