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의 보호자로

2024. 9. 15. 17:07★ 나와 세상

6월부터 허리와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디스크는 남편의 오래된 고질병이었다.
목디스크 진단은 2년전에 받았으나
목이나 어깨통증은 못 느낀다고 했었다.



최근3개월 정도 회사일이 많았다.
새벽에 출근해서 낮에 퇴근 하는날이 많았다.
정형외과에 1주일간 두 번이나 입원했었다
이번에도 허리나 목디스크가 발병했었다고만
생각했었다.
출근 하는날에도 퇴근해서 집근처 정형외과를
다니면서 물리치료도 받았다.
거기다 치과 임플란트 시술까지 받다보니 체중이
5키로 이상 빠졌다.

임플란트 시술중 금주기간 빼고는 여전히 술을
마셨고 주말마다 축구를 하러 나갔다.

7/9일 왼쪽 어깨죽지가 가렵다고 긁어달라고 했다.
그 때라도 검사를 하고 빨리 치료를 시작했다면,
남편에게 병원에 입원해서 종합검사를  해보자는
내 주장을 좀 더 강하게 해서 7월에라도 발견했었다면.....
다 쓸데 없는 자책과 후회들뿐이다.

급작스러웠다. 모든게.
8/26.월. 2번째 정형외과에서 퇴원후
서울 2차 병원에서 복부 CT촬영.
폐에 혹 발견. 모양이 좋지 않다고 요즘 의료파업으로 대형병원 진료 잡기 힘드니 모든 인맥과 지인을 통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조직검사를
하라는 의사말에 남편과 나. 혹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암 의심 소견인지도 물어보질 못했다.
2차 병원원무과 직원과 남편도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면서 조직검사가 가능한 대형병원 진료일 확인하기에 급급했다.
그나마 젤 빨리 잡은게 2차 병원 원무과 직원이 잡아준 경희 의료원 9/4.수요일이 제일 빠른 진료일이었다.

집으로 왔다.
왼쪽 어깨 통증은 하루가 다르게 심해졌다.
심리적인 것도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그때까지도 폐에 생긴 혹의 크기와 위치가 흉막신경을 눌러서 그럴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냥 현실 같지 않았고 암일거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처방해준 항생제나 마약패치도 소용없었다.
식사도 할 수 없을정도로 왼쪽 어깨통증은 심해졌고 앉거나 서 있는 자세가  불가능해졌다.

서울대 병원은 암진단을 받은 환자가 아니면  예약 자체를 받지 않았다.
남편은 암 진단을 받은게 아니고 암 의심 소견을 받은 환자였기 때문에 진료 자체가 불가능했다.
연세 세브란스 병원은 9/24.화. 제일 빠른 진료일이었다.
국립암센터가 생각났다.
11년전. 내가 자궁상피암 진료를 다니던 암전문 병원이었다.
9/2.화. <호흡기내과> 진료를 잡을수 있었다.
아마 누군가 그날 예약 진료를 취소했었던것 같다.




9/2.월요일. 2차병원에서 찍은 CT사진과
소견서와 피검사 결과지를 본 암센터의 의사가
말했다
폐암이고 최소 3기 이상일 확률이 70% 이상이라고.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고 조직검사 일정 잡기
급급했다. 암 전문 병원이었다.
대부분이 중증 암환자일것이다.
의료파업으로 의사들이 부족하다는걸 뉴스로만  접했다.
그나마 남편 상태가 후기(3.4기)로 예상한  의사샘이 최대한 빨리 일정을 잡아줘서 9/4. 9/5 이틀에 걸쳐 조직검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급작스럽게 더 심해지는 남편의 왼쪽 어깨통증의 강도는  하루 하루가 달랐다.
입원해서 검사를 할 수도 없었다.
병상이 없었다.
이틀간의  검사로 인한 금식과 특히 밤과 새벽에  남편이 겪어야 했던 통증의 강도는 옆에서
지켜보는것조차 처참했었다

새벽에 찾은 응급실. 침상에 눕지도 못하고
간이의자에 누워 있다가  마약성  의료약만 받아서 병원 근처 숙소로 돌아왔다.
10초 걷고 의자에 누워야 했다.
벽에 기대는것으로도 통증은 완화 되지 않았다.
무조건 반듯하게 누워야만 했고
마약성 진통제를 12시간마다 복용하고도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을 가라 앉히기 위해 복용했던 속효성 진통제까지....

결과가 나오기까지 6일동안 집에서 버텼다.
수시로 찾아오는 새벽녘의 통증으로 몸부림치는
남편을 부둥켜안고 여러날을 울었다.
같이 울기만 했다. 내가 해줄게 아무것도 없었다
다 꿈 같았다.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혹이 너무 커서 그럴거라고..
암은 아닐거라고..
아니 나중엔 암이어도 2기 정도일거라고.
3.4기는 아닐거라고..
폐암 환자 카페에 가입해서 이런 저런 글들을
읽고도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루 24시간 동안 단10분도 일어나 앉아 있지 못하고 지내는 남편은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주말마다 축구를 다녀오면서
술을 걸치고 오던
늘 긍정적이고 내 속이 터지든 말든
자기 혼자 사는게 즐거웠던 사람이었다.

조직검사 결과는ㅈ폐암4기였다.
머리빼고  척추 허리 소장  할것 없이 이미 다
전이가 되었고 건강했던 사람이었던것만큼
전이속도도 너무나 빨랐다.
수술 불가
표적치료제
유전자분석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의사선생님 말들은 기억나는게 없다.
무조건  최대한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했다.

남편은  최대한 빠른 치료를 간절하게
바랬다. 등쪽 통증만 없으면 살 것 같다고 했다.
조직검사 들은날에도 병원 근처에 숙소를 잡고 잤다.
다음날 치료법에 대해 들었고 폐암4기고
전이가 심한 상태라 속도전이라고  했다
이판 시판이라는 단어까지 들었다.
그런데 병실이 없다.
다른 대형병원은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이틀뒤부터 추석 연휴였다.

목요일 오후에 응급실로 들어가 대기했다.
하루를 응급실에서 버텼다.
몰핀을 4시간마다 맞으면서.
새벽부터는 몰핀 링겔을 맞고 3시간도 안되서 통증이 찾아왔지만 버텼다.


금요일 아침.
정상이던 호흡수도 안 좋아졌다.
흉부CT를 다시  찍고 폐에 물이 차서 10시쯤
폐  일부를 뚫어 호스를 꽃아 물을 빼기 시작했다.
담당 의사샘이 응급실에 왔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유전자분석 결과 나오는 2주동안을 기다릴 여유가
없단다.
오후에 입원실 올라가면 바로 1차 항암치료
시작할거라고 했다.
오후 2시에 입원실 입실.
항암치료에 관한것들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여기 저기 사인하라는것 무조건 다 했다.

오후 5시부터 1차 항암치료제 투여받기 시작.
식은땀 발열 온몸의 구석 구석의 통증.
위기를 넘기고 11시쯤에 1차 항암을 마쳤다.

토요일 아침.
처음으로 3분의 1 정도 식사를 했다.
화장실을 걸어서 다녀왔다.
그것만으로도 나와 남편은 기뻐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오한이 났다.
열도 났다. 38.7도. 39.3도
폐암 환자에겐 열이 젤로 무섭다고 했다.
폐렴에 걸리면 죽음이라고 들었다.
간호사와 의사가 왔다.
혈액을 빼고 열과 혈압 산소포화도를 검사하고
x레이 기사가 기기를 밀고 병실까지 와서 남편
흉부X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열은 내렸고 염증수치도 변화는 없단다.
하지만 항암후 한번이라도 열이 났다는것은
복부나 다른쪽에 염증이 생길수도 있으니
앞으로  또 오한이나 열이 나면 바로 간호 데스크에 말하라고 당부의 말을 들었다.

지금도
나는
이 현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누워서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는
남편의 모습을 봐도 맹장이나 좀 더 큰 수술을 받고 누워있는 남편을 간호하는  아내역할을  하고 있는것 같기만 하다.


***
체중이 5키로 이상 빠지거나
숨차는  증상이 생기거나
허리나 어깨쪽 통증이 있으면
단순히 갱년기나 고질적인 정형외과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50대가 되면 아무 이상 없어도 1년이나 2년에
한번씩  복부CT  찍어보시라고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제 남편 해마다 거르지 않고 건강검진 했고
자비 더 내고 피검사도  별도로 했습니다.
담배는 끊은지 18년이나 지났고.
고혈압. 당뇨도  없었는데...
복부 초음파는 2년전에 했는데..
작년11월에 건강검진에서 이상 없음 소견 받았고
대장 내시경에서 용종2개 떼서 조직검사에서 이상없음으로 나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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