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해온 마음들

2026. 2. 5. 12:51★ 나와 세상

<50년전에 찍은 할머니 사진을 AI가 일러스트로 그려준 그림>

   

 

  어렸을 때 바깥에서 힘든 일이 있었을때, 나는 집에 와서 엄마나 할머니에게 이야기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대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로 집으로 가는 아이였다.

그때 나는 왜 울음을 숨겼을까?
엄마나 할머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라기보다 내가 겪은 일을 엄마나 할머니가 해결해

주지는 못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고 마음을 숨기는 법을 먼저 배웠다.
슬픔이나 힘듬을 설명하는 대신 삼키는 법을, 불안을 드러내기보다 견디는 법을 먼저 배웠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안전한 가족이 무너지면 나는 어디에도 기댈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였던 나는 일찍이 깨달았다.
안전은 누군가가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저와 동생이 14살, 12살때 찍은 사진을 AI가 일러스트로 그려준 그림>

 

   그 불안은 자라면서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다른 모습으로 내가 어른이 된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불안이 많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자신이 정직하고 반듯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는 사람이 되었다.
말하지 않으면 오해받을 것 같았고, 설명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으로 오해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야 했고,

내 의도와 마음을 빠짐없이 전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 태도는 종종 말이 많은 사람, 변명하는 사람처럼 비쳐졌을 것이다.
정직하려는 노력은 계산처럼 오해받을 수도 있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설명은
이중적이고 가증스러운 위선이라는 말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 제가 11살때 엄마와 두 동생들과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면서 찍은 사진을 AI가 그려준 일러스트 그림>

 

 

  그 말들이 나는 억울했다. 그러나 나는 그 억울함마저 다시 설명하지 못한 채, 또 한 번 침묵 속으로 물러났다.
어릴 적 울음을 숨기던 아이처럼. 오해받지 않기 위해 말해온 나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 될 자신이 없었다.
침묵이 언제나 나를 지켜주지는 않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글로 나 자신의 많은 것들을 풀어내는 일이었다.

말로는 다 전하지 못했던 마음들, 설명하다가 흩어져 버린 진심들, 불안 속에서 미뤄두었던 선택들을
나는 글 안에서 천천히 다시 마주한다.

이 글은 그동안 설명해온 마음들에 대한 기록이다.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나 자신에게만큼은 조금 덜 숨기고 싶어서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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