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콧속을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촉촉하게 해준다.
밤새 누군가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내몸 구석
구석은 무겁고 쑤시고 아릿한
아픔에 시달린다.
남편의 술주정처럼, 아마도 이런 나의
아침은 앞으로 늘상 반복되어질것이고,
내가 이혼신고서에 도장을 찍기전까지는
이런마음과 몸의 병처럼 밤새 앓는일은
사라지지 않을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4시가 다된 시각에 음식쓰레기를
버러러 집을 나서는 나, 사방으로 막혀
있는 네 개의동 아파트가 둘러쌓여
있는곳에서 그 많은 집들의 창문들을
흝어봤을때 우리집 빼곤
모두 불이 꺼져 있는 창문들을 확인해본다.
각자가 나름대로 힘겨운 고달픔들과
슬픈사연들이 있을 집집마다
오늘 새벽4시엔 모두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어 보여서,
괜한 서러움에 나는 혼자,
그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불행한 여자가 된다.
몇분전에 당신은 사람도 아니고 짐승과 다르지 않다고 따지던 나의
표독스러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음식쓰레기를 버리고나서 동료 차에서
내려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내 두아이의 아빠를 쳐다본다.
나의 젊은 시절을 늘 그렇게 술과 함께사는 남자 때문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이론적인 나의 마음과,
저렇게 더 이상 초라해질수 없을만큼 너무나 하찮아 보이는
저 나약한 남자만을 바라보는 생활따위는 하지 말자고 숱하게
다짐하고 있던 나는 그 흔들리는 남자를 불러 세운다.
내 마음으로 그 남잔 미워하고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가찮아 하고 있으면서
내팔을 잡고 내게 기대어 오는 그 초라한 마흔이 된 덩치큰
사춘기 소년의 철없는 마음을 가진 남정네의 몸을 부축여준다.
나는 친구들과 만남도, 그 어떤 회사회식에도 새벽4시가 될 때까지
놀다온 들어오는 그런적도 없으며, 내 동생도, 내 친한 친구들이
그런것까지 꽥꽥거리며 바르지 않다고, 그런 방탕한 생활하지말라고
소리를 질러대던 나였기에, 이제까지 그렇게 숱하게 봐온 남편의
새벽귀가엔 익숙해지지도 않고, 무심해지지도 못하는 나를
다시 한번 발견한다.
이번에도 차에다 핸드폰을 두고 내린 남편 요구대로
남편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남편과 비슷한 남편 남자 동료의
혀꼬부라진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이런 상황자체가 짜증스럽고 지긋지긋하다.
이놈의 술 때문에 그동안 잃어버린 핸드폰만 해도 열대는 족히
될것이고, 지난번에 분실한 핸드폰 할부금이 이달에야 끝이 나고,
지금 사용하고 핸드폰의 할부금은 아직도 절반 가량이 남아 있다.
횟수가 줄었고 술값으로 돈을 날리는것도 아니고,
몇 개월에 있는 회사회식이니까 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려 해도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 남편의 술자리에 대한 거부감,
새벽3시가 넘는 시각까지 쭈그리고 앉아서 밤을 까고 있는 내
몰골이 말할수 없이 궁상맞고 비참한 모습으로 느껴진다.
구질구질한 내 삶,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서서 술취한 남편 기다리면서
올려다본 새벽하늘에다 대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크게 다가오는것은 내 두아이의 미래, 나와 남편의 노후,
암담하게만 느껴진다. 남편의 대한 미움보다는 이제는
그런 남편과 함께 가야하는 나와 우리 식구들의 암담한 미래가 보인다.
술을 완전하게 끊고 보통의 남자들처럼 가정적인 남자로
10년을 살다가 10년뒤에 어느날 문득 친구들과 한잔 하고
들어온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아도 나는 분노할것이다.
가슴에 남은 상처, 특히나 배우자 때문에 마음에 받은 상처는
그렇게 오랜시간이 지나도 아물지가 않고, 언제든지 건들면
금방 덧나버리는 고질병으로 자리잡는듯 싶다.
다른 여자에겐 아니어도 나란 여자에겐 그럴것 같다.
어젯밤에 암으로 투병중이시던, 나에겐 거의 남과 다름없는
아니 남보다 못했던, 나의 큰고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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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음을 받았다는 애길 듣고도 갈필요도 없다고 윽박 지르시던
친정엄마의 지나간 엄마마음으 상처처럼, 참 사람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는 수십년이 지나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것인가 보다.
참으로 불행한 삶은 살다가신 개인적으로는 너무 가여운 분이셨다.
하지만 나또한 그런 큰고모님의 죽음에 애도함보다는
그저 도리상 남편과 함께 문상을 가봐야 하는, 우리 한달 지출에서
추가비용으로 가계부 한칸을 채우는 그런 목록으로만 생각할것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생활인으로 변해가면서, 메마른 나의
마음이 더 말라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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