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간만 자고 상가집에 들럿더니 밤을 지세운것도 아닌데
온몸이 찌뿌둥하고 천근만근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새벽3시까지 밤을 까던 며칠전 휴우증으로 왼손 엄지손가락에
베인 상처가 곯았는지 연신 욱씬거려서 움직이기도 힘이 든다.
이번주는 밤까는 일을 잠시 쉬기로 했다.
큰고모의 장례식, 내겐 거의 남과 별반 다르지 않는 분이었다.
그분 일생은 너무나도 가엾고 고달픈
그리고 말할수 없이 슬픈 인생이셨다.
문상객이 거의 없는 초라한 영안실 분위기,
이번에도 내가 우리 친정쪽 집안에서
제일 좋아하는 둘째 고모님 오빠들은 전부 와주었고,
큰오빠는 화장터까지 따라나서기로 했다.
둘째고모집의 4명의 오빠, 내게 그런 오빠들이 있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아들이라서 아니라 그 4명의 오빠들, 둘째고모와 고모부의
성실한 생활을 보고 자라서인지 그분들의 좋은것들만 닮아 있다.
바르고 그리고 성실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길줄 아는,
부자도 없고 빵빵한 배경도 없지만 그저 보는것만 해도
흐뭇해지는 형제간들의 우애와 부모자식간의 보이지 않는
끈끈한 정이 느껴지고, 그 오빠들 모두 자기 아이들과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할줄 아는 남자들이다.
물론 내가 제3자 입장에서 봐서이겠지만, 그 오뺘들의 부인들도
볼때마다 따뜻하고 정스러워 보인다.
돌아가신 큰모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 쉰살이 넘은 그분,
참, 일일히 말하고 싶지 않을정도로, 어른이 아니면 내 기준에서
실패한 인생을 사신 그런분이셨다.
내가 아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큰아들인 관계로 딸만 낳은 우리 엄만
고모외 할머니에게 뭣취급을 받았다.
내 어린 기억 뒷편에 조각조각 남겨져 있는
우리 엄마의 서러운 애기들이 나로 하여금
돌아가신 큰고모와 생존해 계신 막내고모에게
미운 감정을 갖게 한다.
그두분의 고모님은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도, 소개하고
싶지도 않는 고모님들이기도 했다.
내가 나쁜년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니 나쁜년이다.
하지만 내가 부자고모를 바라거나, 고모들의 자식들이
잘살지 않아서 내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게 아니다.
둘째 고모도 그 고모의 오빠들이나 딸들 모두 잘살지 않는다.
하지만 내 고모님이셔. 어떤 분인지 자기 알아?
라고 자랑할수 있는, 존경받을만한 성실하고 가정적이고
너무 열심히 사신 분이셨고 그런 오빠들이다.
막내고모의 둘째오빠도 다행히 내 기준에서 자랑스러할수 있는
성실하고 가정의 소중함을 최우선으로 생각할줄 아는 그런 오빠다.
쉰살이 넘은 큰고모의 아들보다 레벨로는 내가 더 대장이라는
작은아버지와 고모님들의 말씀에 나는
내가 아들로 태어나지 않는걸 다행으로 생각하게 된다.
맏이인 나만 다녀오라고 당부하시는 친정엄마 말씀에
동생들에게 오지 않아도 될것 같다고 햇는데 두 동생들 모두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남편도 서너시간만 잤기 때문에 피곤해하는 날이었다.
보미와 혜미는 동네 선배언니집에 맡겼다.
아는이 없던 내게 그 언니의 존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상가집에 들렀다가 일보고 조금 이른 퇴근을 한 남편이
그 언니집에 들러 밤8시쯤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도착을 했다.
졸음이 쏟아진다는 나는, 남편에게 명령을 내리는 군인처럼,
아이들을 재우고 날 데리러 오라고 부탁이 아닌 명령을 했다.
집에 도착을 하니 밤12시가 다됐다.
장지까지 따라 갈 사람이 두고모와 고모부, 작은아버지,
그리고 돌아가신 큰고모의 외아들,
그리고 둘째고모의 큰아들뿐이라서
나도 벽제까지 가야 했는데 아이들 핑계로 빠져 나왔다.
구미와 대전에서 올라온 둘째고모의 둘째세째 오빠들도 밤에
다시 내려갔고, 부산에서 올라온 막내고모 둘째 오빠도
나보다 일찍 오후 6시경 내려갔다.
이번엔 그 둘째고모님과 둘째고모님 아들들,
내겐 사촌오빠가 되는 분들이 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의
친고모님의 장례식임에도 가보지도 않았을런지도 모르겠다.
둘째고모의 큰오빠는 이번에도 맏이로서의 몫으로
힘든 이틀을 견디게 될것이다.
나는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이유로 내 스스로
고모의 조카의 최소한의 의무만 하고 돌아올수 있었다.
아마도 둘째고모집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분명 나는
절대로 이런식으로 빠져 나오진 않았을것이다.
오늘은 내 막내동생의 생일이다.
내일은 보미도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라서 오후쯤에
막내집에 가볼 생각이다.
지 아들놈이랑 쓸쓸하게 생일 케익을 자를 생각을 하면 맘이 안좋다.
둘째도 이번엔 막내집으로 온다고 한다.
내일은 이모님 생일이지만 가보지 못할것 같다고 전화를 드렸다.
내일은 시골에서 친정엄마가 올라오신다.
재혼하신 엄마의 막내딸의 둘째 아이 돌이라서 나도 두 동생들도
거기에 가봐야 할것같다.
그리고 모레 일요일엔 시어머니 생신이다.
마지막에 걸린 시어머니 생신이 내겐 제일 부담스럽다.
뭘해도 욕심 많은 어머님을 만족시켜드리지 못하겟지만,
며느리로서 최소한의 도리라는 단어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나는 괜히 또 마음만 초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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