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과 함께 보낸 휴일

2005. 4. 6. 09:34★ 아이들 이야기

        
        아침엔 김밥을 쌌다.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은 보미가 방과후 학교에서
        컴퓨터수업을 1시간 받고 오는날이라서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어제 남편과 두아이는 의정부에 있는 공설운동장에 다녀왔다.
        매주 일요일마다 축구를 하러 나가는 남편이 , 어젠
        다른회사와 시합이 있다고 처음으로 잔디가 깔려 있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수 있게 됐다고 설레여 했다.
        남편이 좋아하는것들중에 몇가지가 내가 알고 있는게 있다.
        술과 무협지읽기와 그리고 축구다.
        쉬는날이면 늦잠자기에도 바쁠텐데 일요일마다 
        축구를 하러 다닌게 벌써 1년이 되어가고 있으니, 
        축구에 대한 남편의 열성은 대단한것이다.
        천성적으로 남편은 그리 부지런하고 몸이 재빠른 사람이 아니다.
        신혼초에도 불규칙적으로 조기축구도 나가고 했지만
        늘 나가다 안나가다, 술독이 안풀려서 중간에 그만둔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벌써 그 축구하는일을 1년 가깝게 그만두지 않고 있다.
        술때문에 나온 배를 집어 넣기 위해서, 
        마누라와 두 아이의  배불뚝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버리기 위해서 시작한거였는데,
        한두달 하다가 또 포기하겠지 했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번엔 
        내 기억으론 한두번 빼곤 단한주도 쉬지 않고, 
        일요일마다 축구를 하러 나가고  있다.
        어젠 일요일이 아니었는데 연휴 맞아서 
        다른 회사팀과 시합이 있다고 다녀왔다.
        그전에도 남편은 아이들을 둘 데리고 축구를 하러 나간적이 있는데
        그런날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한가롭고 
        간만의 만끽하는 자유스러움에
        집안에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제도 그런날중의 하나였다.
        연신 쿨럭거리는 작은아이는 데리고 가지 말라고 있는데
        작은아이가 떼를 쓰는 바람에 남편은 두아이 둘을 다 데리고 나갔다.
        식혜를 만들고, 오뎅과 감자를 볶고, 김치찌게를 만들어놨다.
        빨래 하기만 급급해서 밀려 있던 남편 남방들과 아이들 블라우스랑
        치마들도 2시간넘게 다림질을 해놨다.
        엊그제 과소비를 하면서 쇼핑한 소고기 불고기도 재워놓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어제 저녁에 간만에  
        풍성한 식단에서 맛난 식사를 했다.
        황사때문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온 
        아이들을 욕조에 받아놓은 들어가게 해서 
        물놀이를 해주게 한 다음, 열심히 씻기면서,
        두게임을 뛰고들어온 남편이 피곤해서 걸음걸이가 
        어거주춤이 된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 없는틈을 타서 집안정리를 
        간만에 말끔하게 해놓은 나를 보면서,
        나는 며칠전에 있었던 남편과의 다툰일을 잊어버리려했다.
        아이들에겐 좋은 아빠가 될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남편이다.
        나보다 좋은점도 많이 가진 그런사람이기도 한 남편이다.
        건강만 해치지 않고 개찬반처럼만 굴지 않는다면 술마시는것도 
        그냥 내가 좀 너그럽게 봐줘버리면 될걸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그런 생각도 언제 어떻게 또 뒤집히질 모르는 일이지만,
        아빠로서 어쩌다가 한번 아이들에게 해준 선행으로 나는
        남편의 대한 서운함을 면제해주고 싶어한다.
        평일엔 아빠 퇴근하는 모습은 보지 못하는 내 아이들이다.
        출근하는 모습을 볼수 있지만 늘 아빠가 퇴근할때는
        아이들은 잠에 골아 떨어져 있으니까...
        우리들을 위해서 힘들게 회사 다니는 아빠니까 
        엄마가 아빠 좀 봐줘
        라는 말도 종종 하는 보미기도 하다.
        그래도 나만큼이나 아빠의 술마시는것에 대해선 예민한 딸이다.
        아빤 딸보다도, 엄마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것 같다는 애기도 한다.
        작은아이는 남들에게 우리 아빤 술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이들도 남편이 술을 마시는것을 싫어한다.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남편을 자다가 깨서 본적도 있고,
        적당히 취한 남편이 자는 아이들 얼굴을 비비는 바람에
        어른도 맡기 싫은 역한 술냄새를 맡기도 했던 우리아이들이다.
        그로 인해 보미는 여자든 남자든 술을 마시는
        자체를 싫어하는 아이로 존재한다.
        특히나 엄마인 내가 술을 마신걸 단한번도 본적이 없는 아이라
        시댁에서 시누나 시어머니가 어쩌다가 맥주한잔이라도 마시는걸 보면
        아주 의아하게 쳐다보거나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여자도 술을 마실수 있다고, 술도 많이만 
        마시지 않으면 나쁜것만은
        아니라고 내가 말해주지만 그다지 8살난 보미에겐 
        설득력이 없는 애기인것 같다.
        어젠 두아이들과 남편, 세사람이 
        전부 9시도 되기전에 잠에 골아 떨어졌다.
        아이들이 벗어 놓은 옷가지들과 남편이 벗어 놓은 
        운동복들이 세탁기에 쳐박혀 쑤셔 넣어져 있다.
        회사에 출근한 남편, 학교에 등교한 보미, 
        어린이집으로 등원한 혜미,
        아이들도, 남편도 없는 이 한가로운 오전시간이 
        나에게 소중하고 귀한 시간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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