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며느리의 말로

2005. 5. 2. 17:55★ 부부이야기

내 가족의 안위보다는 남앞에서의 나의 체면이 더 중요하고, 가족에게 인정받고 다정한 아빠, 책임감 있는 남편이기보다는 남에게 인정받고 남에게 사람 좋고 인간성 좋다는 소리를 듣는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게 더 우선시 하는 사람이 내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우리 가족에게 커다란 타격이 오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뒷전이고 그문제에 있어서 아내인 나에게 기대는 남편의 태도에 화가 치밀고 가슴이 무너지고 절망하던 나였다. 독하지 못하고 모질지 못해서가 아니고 한심하고 철딱성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것이라고 생각되어져서, 그런 남자가 나랑 사는 내 남편이고 내 아이들의 아빠라는 사실에 많이도 절망햇었다. 나도 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중에 한명인것 같은데 자기 주제 파악은 못하고 분수도 까부는 꼴이 가찮아서 기가 차고 코가 막혀서 숨이 꼴까닥 넘어갈뻔한적이 참으로 많았다. 그런데 내가 그리 깔보던 남편의 모습이 너무나도 나랑 닮아 있다. 시댁을 대하는 내 모양새가 딱 그랬다. 시어머니을 대하는 내태도가 그런 남편의 모습을 한치도 다르지 않다. 감기몸살이 심해져서 집에서 하루이틀정도는 쉬어야 한다고 했는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나마 다니시는 회사에서 짤릴까봐 하루도 쉬지 않고 약으로 버티시던 시어머님이 드디어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시아버님 제삿날 밤에 도착을 했을때도 어머님의 끙끙 앓으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며느리라는 자리에 있는 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시댁 가까에 사는 큰시누가 이번에도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들렀는데 병원에선 입원을 하셔야겠다고 했는데 다음날 출근할 욕심에 어머님은 집에서 링겔을 한병 맞고 버티신것이다. 큰시누와 내가 제삿상을 차리는 내내 방에 가셔서 누워계시라는대도 나물 한가지라도 목기에서 흘러내리게 차릴까봐 못미더워하시는 시어머니는 끙끙 소리를 내시면서도 참견을 하시고 탕국까지 끓이셨다. 정말이지 우리 어머님 세대들 그런 모습들, 너무나 짜증스럽고 싫다. 내 친정엄마도 그러신다. 곧 쓰러지실것 같으면서도 기여히 일어나셔서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참견하시고 자기손에 꼭 가야지만 직성이 풀려 하시는 그런 성격, 얼마나 그게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지, 얼마나 사람 돌게 만드는지 그분들은 모르시는것 같다. 친정엄마도 그러신적이 있으셨는데 그럴때는 난 소리소리 질러대면서 온갖 신경질을 다 냈었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겐 편찮으신데 그냥 좀 가셔서 누워 계세요 라는 말만 해야 하는게 며느리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우와중에도 내 남편때문에 병이 났다는 말씀을 나 들으라고 하셨다. 남편이 꼭 없는 자리에서만 그런 말씀을 하시는 시어머니, 아프신 모습에도 불구하고 난 그때 나의 시어머님이 너무 밉고 싫었다. 그런 남편 자기가 낳은 자기 아들인데 나보고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 애길 들은 내 큰시누가 화를 낸다. 그런 소리 좀 하지 말라고~ 엄마 병난게 왜 오빠때문이냐고.... 잘난 내남편이 새벽3시넘어 시댁 들어가서 잔날 전날엔 막내시누가 또 술푸고 새벽에 들어간일이 있었고 그전부터 어머님은 감기몸살이 너무 심해서 끙끙거리고 계셨다고 한다. 허둥지둥 제삿상을 차리고 절을 하는 남편과 시누 남편과 시동생의 모습에서도 나는 화가 이미 나 있었다. 자기 아버님 제삿상 차리는 일에도 큰시누 신랑이 일일히 참견하면서 아는척 하는것에 못을 박고, 집안제사 차리는 격식은 집안마다 조금씩의 차이가 있는법인데 큰시누 남편이 하는대로 내버려두는 남편이 정말로 못나게 보였고 큰시누 남편의 참견하고 나서는 모양새도 내눈에 보기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제삿상 물릴때무렵에 미리 시어머님의 사주를 받은듯한 시이모님의 보미 아범 아들 하나 더 낳게 해달라고 말엔 아버님 제사상을 확 엎어버리고 싶었다. 하룻밤을 자고 여전히 끙끙 앓으시는 시어머님을 뒤로 하고 보미 학교때문에 새벽에 시댁을 나서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그날 점심때쯤에 어머님이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막내시누에게 전화를 걸어서 알게 되었다. 폐렴이라고 했단다. 애둘 맡기고 가겟다는 내 말은 진심이었지만 마음에서 우러난게 아닌 의무감에서 나온 말이었다. 막내시누가 오지 말라고 한다. 주말에나 오라고 했다. 입원한날엔 자신이 있으면 되고 다음날엔 큰시누가 곁에 사니 오지 않아도 된다고, 작은아이도 감기기 있으니 오시지 말라고 했다. 그런 시누에게 내가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게 참 우수웠다. 시어머님도 오지 말라고 하신다. 수년전 시아버님이 폐렴으로 입원하셨을때 병원에서 먹고 자기를 하면서 시댁과 병원을 오가면서 간병인 노릇을 톡톡히 했던 예전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는 몸서리가 쳐졌다. 그때에도 아버님 부축여서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아버님의 소변을 받아 하루하루 소변양을 체크하고 침상에서 쪼그리고 누어 새우잠을 자던 그 기억이 났다. 그래도 그땐 난 아이도 없었고 중요한것은 난 나의 아버님을 싫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견딜수 있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그때 보름동안의 아버님의 간병인 노릇을 하르랴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좀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멀쩡한 시어머님이 계셨는데 왜 며느리인 내가 그 일을 했는지.......... 1년만에 이루어지게 되는 나의 친정행이 이번에도 시댁일로 수포로 돌아가게 된것에 더 화가 났고, 며느리인 나에게 간병인 노릇을 탕감해주신 대신에 그 병원비를 우리에게 부담시킬까봐서 두려웠다.. 나의 시어머님은 그런 계산은 확실한 분이시니까... 아버님이 숨이 잠시동안 끊겼을 그 절박한 순간에도 119를 부르는 시누들과 시동생은 다 젖쳐놓으신체 나와 남편만 따로 불러 작은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셔서 중환자실 비용 니네가 댈거면 지금 119 부르고 그럴 자신 없으면 부르지 말라고 하신분이셨다. 어머님은 중환자실 입원비 댈 능력 없으시다고, 니네가 댈거면 119 불러 아버님 병원으로 모시라고 하셨던 그런 분이시니까.. 난 그때 이미, 내 시어머니를 소름 끼치게 두려워 했었다. 자기 부모가 자기 눈앞에서 숨이 잠시 끊겨 당장에 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대로 임종하게 될판인데, 그 어떤 자식이 자신이 지금 현재 길거리에 나앉아 있는 상황에 있는 자식이라도 그런 상황에 119를 부르지 않을 자식은 아마도 없을것이다. 그랬다, 내 시어머님은 그런 분이었다. 둘째 동생은 이런 나의 상황에 짜증스러워 했다. 시어머님이 쓰러지셨으니 당연히 친정행은 물건너간 일이란걸 아는 동생이었지만, 늘 언니인 내가 시댁일로 그렇게 얽매여 사는 모습에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언니 가지마, 어쩔수 없잖아. 나도 가기 싫은데.. 라고 한다. 가고 싶었다. 친정에 너무나 가고 싶었다. 시어머님이 입원한 당일에 병원에 들러보라는 내 당부에도 역시나 내 남편은 회사 일때문이었다고는 하나,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남편이 알아서 효자 노릇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입장에서 그런 남편이 얄밉겠지만 내 어깨가 가벼울것만 같다. 그런데 남편은 가지 않았고 이번에도 내가 더 맘이 초조하기만 했다. 다음날 남편에게 내 카드를 주었다. 먼저 거짓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막내시누에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언제 퇴원하시는지, 그리고 병원비는 얼마정도 되는지...... 예전에도 어머님의 거짓말에 번번히 속아 병원비를 잘못안 기억이 있어서.. 시누가 병원에 입원햇을때도 어머님은 입원비가 30만원 나온다고 하셨다가 퇴원한날 영수증 보니 5만원이 찍혀 있었고, 아버님 살아생전에도 수술비만 50만원이 들어서 입원비까지 합하면 100만원이 넘을것 같으니, 그냥 죽어야겟다고 하셔서 없는 돈에 빚내서 50만원 마련해드렸더니, 나중에 보니 수술비는 17만원, 입원비까지 해서도 30만원이 채되지 않았던 그런 기억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돈에 대한 효력은 내 시어머니에게 어느기간동안은 존재한다는걸 알고 있는 나는 그렇게라도 해서 이번 친정행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2박3일 입원하셨는데 병원비는 138,000원이 나왔다. 폐렴은 아니라고 하신다. 감기몸살로 탈수가 된것이라고....... 한다. 입원 다음날 연꺼푸 남편에게 전화해서 독촉을 해서 남편이 어머님 문병을 가게 만드는것도 내몫이었다.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나의 시어머님, 이번에 탈수된것뿐이니까 처가에 꼭 다녀오라고, 주말에 올 필요 없다고, 오면 내가 더 불편하다고, 작은아이도 아픈데 오면 안된다고, 제사 음식마련하는데도 힘들었을텐데 병원비까지 마련하르랴, 니네도 힘들텐데 하신다. 이번 어머님 병원비를 우리가 댄것을 나는 동생에게 비밀로 붙혀야 할것이다. 둘째 동생은 혹시나 이번에도 내가 시어머니 병원비 댈까봐서 미리 걱정을 했었다. 이번엔 절대로 시어머니 병원비 대지 말라고, 제발 좀 언니 애들 좀 생각하고 살라고, 나 같으면 언니 시어머니 너무 미워서 쳐다도 안볼것 같다면서,,,, 언니 시어머니가 이번에도 분명히 언니에게 돈 애기 할거라고, 그래도 절대로 아는척 하지 말라고 했다. 언니 돈도 없잖아. 한다. 그러고 나선 나는 친정엘 다녀왔다. 제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갈 때 고속도로 통행료 14,000원만 낸채, 절대로 돈쓰지 말라고 화를 내는 동생 눈치를 보면서 휴게실에서 사먹는 국수값도 안내고, 새아빠 되시는분 생신 때문에 내려갔음에도 다른 형제들은 다 얼마씩 돈을 거뒀음에도 내가 내미는 5만원을 역정을 내면서 거절하는 새아빠와 친정엄마를 뵈면서 나는 친정에서 퍼다가 시댁에 나르는 딸모양이 되었다. 너무도 미안한 마음에 동생 아들내미에게 쥐어준 만원짜리 한 장 때문에, 나는 오늘 아침에도 동생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언니는 길바닥에 나앉아야지만 정신 차릴거라고, 왜 선호(동생아들)에게 돈줬냐고 제발 좀 그러지 좀 말라고... 이번주말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제사라서 동생 통장으로 5만원을 부쳤다. 동생에게 나란 언니는 그저 한심하기 그지 없는 언니로만 존재하고 있는듯하다. 동생에겐 시어머니 병원비 내준 덕에 친정 가게 된것은 비밀로 해야 할것이다. 친정아버지 제사 경비 보태라고 보낸 5만원에 대해서도 동생에게 한바가지 욕을 먹었다. 친정엄마는 요며칠 시아버님 제사와 시어머니 입원한일로 더 마른 내 몰골에, 나랑 내 두딸들 몽땅 하두 말라서 어디서 내 딸이라고, 내 외손녀라고 말하기조차 챙피스럽다는 말로 내 가슴에 못을 박으시는 말씀으로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셨다. 그런데 나의 시어머니는 시골에 도착해서 퇴원 잘하셨냐는 안부전화에 대고, 남편보고 이번주 집에서 쉬게 되면 어머님 회사 못다니시게 될거라고 그럼 어떡하냐고, 간접적으로 그리 되면 우리가 생활비일부를 대야 한다는 암시를 주셨나보다. 여하튼 대단한 나의 시어머니, 그리고 그런 시어머니에게 점점 더 악만 받쳐서 이제는 나도 내가 어찌 변할런지 모르겟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자기자신밖에 모르시는 분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일에 더 이상은 망설일 필요가 없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런 시어머니를 내가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후회스러움에 나의 확실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은 나의 시어머니의 이런 횡포 비슷한 모습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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