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6. 2. 13:51ㆍ★ 아이들 이야기
“아빠 생일 축하해요.
아빠 생일인데 해줄게 없어서 뽀뽀도 해주고, 이렇게 편지로 쓰는거야.
아빠, 죽지 말고 우리랑 오래오래 살어.
아, 참 그리고 술은 아예 먹지 마! 그래도 다른 사람이 술먹자고 하면 화장실 간다고 거짓말 하고 집으로 곧장 와! 알았지?
아빠 사랑해요. 아빠딸 김보미 올림“
지난주 목요일이 남편의 생일이었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8살된 보미가 컴퓨터로 편지를 써서 프린터기로 뽑아서
아빠에게 줄 편지라고 작성한 글이다.
몇글자가 틀린곳과 띄어쓰기가 틀려서 그것만 고치라고 해서 그 편지를 작성해서
남편의 생일 다음날 아침에 보미는 그 편지를 남편에게 직접 전해주었다.
남편 생일 당일날 아침,
6살된 작은아이가 언니가 쓴 편지라고 출근하려는 남편에게 보미가 쓴 편지를 전해주려는걸
보미가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다.
내 편지덴 왜 네가 아빠에게 주냐고, 그리고 편지는 생일날 저녁에 케익 자르면서 줄건데
왜 아침에 주냐면서 작은아이 손에 들려진 편지를 확 낚아 채는거다.
작은아이를 무섭게 노려보면서..
요즘 큰아이의 8살 사춘기가 시작된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뭐든 빠르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자랄때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내 아이 말고도 자주 느끼고 있는 나였다.
반항이라고 표현하기는 뭐하지만 근래 들어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보미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나서부터
많이 활달해졌으며, 심부름 하는것을 즐거워 하던 아이였는데 귀찮아하고 있으며, 엄마인 나와 동등한
대화(?)을 하려는 어조로 자기 의견을 밝히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음을 자주 느끼고 있다.
여러면에서 나와 많이 닮아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문득문득 나와 참 다른 면을 보미에게 발견을 할 때가 생기고 있다.
이번 시댁행에서도 그랬다.
왜 꼭 우리가 할머니집에 가야 하는거냐고,
할머니는 우리집에 딱 한번밖에 안왔으면서 맨날 맨날 우리보고만 오라고 하는거냐고,
우리가 한번 가면 다음번에 할머니보고 우리집에 오시라고 하면 안되냐고,,,,
할머니는 아빠의 엄마고 어른이시고, 할머니 혼자 우리집 까지 오시려면 힘드시니까 우리가 가는거라고 설명을 했다.
우리는 대부분 아빠 자동차를 타고 가니까 덜 힘드니까 우리가 더 자주, 많이 가는거라고 대답해줫다.
그랫더니 보미가 그런다,
우리들도 엄마랑 버스 타고 전철 두 번 타고 또 버스 타고 할머니 집까지 간적도 많이 있다고,
그럼 우리도 힘들다고, 엄마랑 우리가 힘든것은 괜찮고, 할머니, 힘든 것은 안되냐고,
할머니가 아빠보고 싶으면 할머니보고 우리집에 오시라고 하란다.
엄마의 엄마도 아니고,할머니는 아빠 보고 싶어서 우리보고 오라고 하는것 아니냐고,
할머니가 아빠 보고 싶으면 할머니 보고 우리집에 오시라고 하란다.
엄마는 할머니 집에 가면 맨날 일만 하고 쉬지도 못한다고, 엄마도 이젠 바느질도 하고 밤도 까고 일많이 해서,
힘든데 맨날 할머니는 할머니 힘든소리만 한다고, 할머니 돈 없다는 말을 왜 엄마보고 자꾸 하냐고,
그래도 할머니가 우리보다 부자 아니냐고, 집도 우리집보다 훨씬 크고 더 잘살고 반찬도 많다고,
삼촌이랑 고모는 결혼안했으니까 돈없으면 삼촌이랑 고모보고 애기 하지 왜 엄마보고 돈애기
하냐고, 할머니 이상하다고.... 우리보고 대체 어쩌라고 그러냐고........
8살짜리 초등학교 1학년인 내딸 보미가 나보고 한 말이다.
다 내가 친구나 동생에게 전화로 했던 애기들을 들어서 보미가 알게 된 말들일것이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운일이기도 했다.
우리 부자 아니라고, 아이들이 뭔가를 사달라고 햇을때 우리집 부자 아니라고, 사주고 싶지만 사줄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했던 엄마인 나를 보고 보미가 나이보다 더 빨리 우리집 형편을 알게 된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자주 보미에게 놀라운 애기들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남편에게도 그런 애길 한다.
아빠, 엄마 좋다고 졸졸졸 쫓아다녔는데 왜
지금은 엄마 말도 안듣고엄마를 속상하게 하는거냐고,
원래 결혼하면 그렇게 변하는거냐고,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는것 맞냐고
엄마는 싫다고 했는데 아빠가 하도 쫓아다녀서 엄마가 할수 없이 결혼했다는데 왜 아빠는 그러냐고...
그러면서도 내딸은 나보다는 아빠를 더 좋아한다.
그래야지만 아빠가 덜 외로울거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작은아이보다는 큰아이에게 더 미안한 엄마다.
나는 남편과의 불화의 화풀이를 보미에게 많이 했었으니까. 보미가 그린 그림엔 늘 나와 남편
그리고 보미 동생 혜미가 모두 손을 잡고 즐겁게 어딘가로 놀러가는 그림이 가장 많다.
보미 교실에 붙어 있는 보미 그림에도 역시나 우리 가족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웃고 걸어가는
그림이 붙어 있으며 제일 자주 그리는 그림도 아빠, 엄마랑 동생과 함께 손을 잡고 있는 장면이다.
나랑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애길 하는 보미를 보면서 문득 나는 보미가 친구처럼 느껴질때도 있다.
8살짜리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이 벌써 나의 동등한 대화상대로 느껴질때가 있다는 애기다.
며칠전에 보미가 그런다.
남편의 늦은 귀가에 대해 내가 변명해주고 있을때, 보미가 내개 그런말을 했다.
“아빠도 공부 잘해서 시험봐서 좋은 회사 들어갔으면 다른 아빠들처럼 일찍 집에
들어올수 있는 그런 좋은 회사 들어갔으면 됐잖아.
그런 좋은 회사 들어갔으면 돈도 잘벌고, 집에도 일찍 와서 우리랑 많이 놀아줄수 있고
엄마한테 잔소리도 안들어도 되잖아..“
보미가 있을때는 나는 이젠 친구랑 전화통화도 길게 하지 않으며, 시댁에 대한 험담도 안하려 한다.
남편과 다투는 모습도 아이들이 깨어 있을때는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쓰고는 있지만,
그것은 아직도 잘 안되고 있다.
그리곤 보미에게 변명한다.
“보미야 너도 사이 좋은 친구랑 잘놀고 좋을때도 있지만 가끔은 화도 내면서 싸울때도 있지?
동생이랑도 잘놀다가도 막 싸우고 그러잖아. 엄마 아빠도 그런거랑 똑같아.
사이좋게 있을때도 있는데 갑자기 사이가 안좋아져서 막 싸우고 그럴때도 있는거야.
맨날 싸우는것은 아니잖아. 그치?“
너무나 약한 핑계를 대는 날 보면서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큰아이가 커갈수록 나는 더 엄마로서 나의 자격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고
더 많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이보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내딸이,
어린나이에 너무 빨리 우리 현실을 깨닫고 있는듯한
보미에게 너무 미안한 엄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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