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주 5일 근무, 빨간 날은 전부 휴무, 잔업이나 야근은 있어도 어디까지나 각자의 선택일뿐이고 무엇보다도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직장이어서 좋았다. 급여는 많치 않치만 많은 체력을 요하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 했었다. 판정 부문에서 한달여 동안 이론 교육과 실무를 익히..
회사에 입사를 하면서 정해져 있는 급여외에는 1년에 두 번의 성과금이라는 것이 지급된다는 애길 들었다.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상여금이 아닌, 회사 오너 분이 직원들 사기 치원에서 지급하는 사적인 보너스 같은거라고 했었다. 당연히 신입인 나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내용이다. 이 성과금..
스물살때부터 시작한 두 여동생과의 자취생활을 할 때에는, 둘째 동생에게 집착을 했었다. 막내 동생은 언니인 나보다 더 모범생이고 나의 잔소리가 전혀 필요 없을 정도의 깔끔하고 부지런한 동생이어서 되려 막내의 잔소리를 듣는 언니일 때가 많았다. 그에 비해 둘째는 게으른 나보다 더 게을렀고,..
<작년 11월달에 구입한 제 스마트폰을 대신해서 올려봅니다> 얼마전에 아이들과 함께 인근 가까운 백화점 화장실에 들린 적이 있었다. 그 곳 화장실에서 주인 없는 최신식 핸드폰을 습득하게 되었다. 분명히 우리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고,그녀들도 그 주인 없는 핸드폰을 봤을텐데도 아무..
서울에 살고 계신 이모부님이 작년 여름에 "뇌암" 판정을 받으시고 시간이 갈수록 안 좋아지셔서 지금은 거동은 못하시는 것은 물론 산소호흡기를 꽃고 노인 요양전문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거동을 하실 수 있던 작년 가을즘에 엄마가 이모부님을 뵈러 올라오셨는데, 너무 안 좋아지셨다는 소식에 차..
1977년 4월 어느 봄날 새벽녘에 아버지는 눈을 부릅뜬채 검붉은 핏덩어리를 토하시면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8살이던 나는 어린 나이에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죽음이 뭔지 몰라서였는지, 아님 늘 병약한 아버지의 대한 정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오늘의 오전 시간을 활동하는 에너지를 위해 아침밥을 챙겨 먹는다. 밥힘으로 하는 아줌마는 아침을 거르면 속도 쓰리고 허기가 져서 눈이 휑해지니까... 풍요롭게 살지 못한 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결혼 전의 나란 처자는 매년 연말이 되면 30 여명이 넘는 친구들에게 카드를 보내면서 편지 마냥 빈 여백을 빼곡히 채워서 부치는 것을 거르지 않았다. 가까이 살던 이모님과, 오산에 살고 계시는 고모님을 비롯해서 그 고모의 네 명이나 되는 오빠들에게도 따로 카드나 연하장을 보냈고, 시골에 계신 ..
몇 번 본 적도 없는데도 웬지 믿음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웬지 그 사람은 정직하고 바른 생활을 하고, 거짓말도 해도 보통사람보다는 덜 할 것 같은 그런 사람을 보게 됩니다. 남편을 비롯해서, 제 친한 친구들도 그런 정직하고 바른 사람의 표준으로 생각하는 사람중의 한 명이 저라는 말을 종종 들..
어린 시절, 고모가 우리 엄마 보고 시집 와서 아들 하나도 못 낳은 주제에..... 라는 말을 내가 듣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만 받고 자란 손녀딸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들의 대한 선호사상이 뿌리가 깊다는 것까지는 몰랐을지도 모른다. 친정엄마가 30대 중반에 남편을 먼..
할머니랑 단둘이 살던 나, 단 한번도 쟁반이나 바닥에다 밥을 놓고 먹어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 말씀이, 쟁반이나 바닥에다 밥그릇을 두고 대충 먹으면 나중에 커서 다른 사람에게 대접 못 받는다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그런 할머니 말씀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나름 일리가 있다는 생..
읍내에 나가서나 볼 수 있었던 빨간색 공중전화기를 기억하시나요? 엊그제 결막염 때문에 작은아이를 데리고 학교 앞 안과에 갔었습니다. 저의 오래된 안구건조증으로 늘 다니던 안과인데 예전부터 70, 80년대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사진들과 그 시대를 느낄 수 있는 교과서나 장난감들을 보면서, 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