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를 떠나온지 벌써 햇수로는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지금도 나와 애길 5분이상만 하면 내게 묻는 질문이 있다. "혹시 고향이 전라도 아니세요?" "네" 하고 대답을 한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전라도 억양을 완전하게 고치지 못했으며 굳이 고치려고 노력을 하거나 한적은 없었다. 고..
퇴사하고 6개월후에 이력서를 작성해 고용보험 사이트에 처음으로 등록을 하면서 취업을 하려는 첫 시도를 했었다. 최종학력란에 나는 전남 장흥여자 고등학교 졸업을 기재 했다. 자격증란엔 운전면허 2종 보통 말고는 기재할게 없었다. 그러고 나서 받았던 전화는 서너통이 전부였으며 그 또한 그당..
12살 보미의 현재 장래 희망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보미로 인해서 처음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있다는것도 알게 되었고 무슨일을 하는건지 알아보고도 싶어졌다 연예인들에 대한 동경때문일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보미의 장래희망은 얼마든지 달라질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것..
"넌, 참 재수없이 말을 해!" "넌 말하는 뽄새가 참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게 있어!" "넌 말하는게 굉장히 건방지게 보여!" "사람이 그냥 저냥 넘어가는것도 있고 해야지 매사 그렇게 하나도 빠짐없이 일일이 따지고 들면 피곤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어? 그러면 니가 젤 힘들어!" "가계부를 그렇게 열심히 쓰..
일본어를 배우면서 키가 제일 크다는 문구를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내 키가 170 라는것을 일본어로 대답을 하자 아직도 약간은 서먹하게 지내고 있는 반 수강생 아줌마분들이 " 너무 좋겠다. 부럽다!" 라는 탄성을 나를 향해 보냈다.. 아주 가끔씩은 이렇게 나의 조금은 큰 키 때문에 무리중에서 시..
목욕탕에 가면 귀퉁이 자리를 일부러 찾아서 두딸들과 함께 앉아서 때를 벗기는 것은 그 귀퉁이 자리가 제일 편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껏 목욕탕을 이용하면서 전신거울에 내 몸을 비춰보는 용감한 행동을 해본적은 단한번도 없었다. 밖에서 외식을 할때도 늘 구석지 자리를 찾아서 앉으려고..
지난 중간고사때 각서를 썼던 두딸들이 이번 기말고사에선 매를 맞지 않아도 되는점수를 받아서 약속한대로 보관해놓은 각서를 폐기처분했다. 수학은 둘다 100점을 받았고 과학과 국어는 한두개 틀렸고 사회만 두명 다 85점을 받아와서 평균 93점, 95점을 받아왔다.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지 않아도 되서..
(제가 6살이나 7살때 사진으로 추정이 됩니다. 제옆의 긴머리 귀여운 꼬마는 저와 두살 터울인 둘째 동생입니다.) 요즘엔 초가집이라는것은 민속촌에나 가야 볼수 있는 집일것이다. 1970년에 전라남도 장흥이라는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도 교도소 앞 마을인 "원도리" 라는곳에서 자란 나는 그 시대에도 ..
잡채와 식혜, 그리고 부침개 2가지와, 배즙 10봉지, 귤10개, 전라도 김장김치 2포기, 복분자 3박스, 참깨 쬐끔, 팥쪼끔, 홍시감3개, 미숫가루 아주 쬐끔씩을 봉다리에 바리바리 싸서 밀폐용기에 넣어서 차트렁크에 싣고 토요일 오전 11시에 친구집을 들뜬 마음으로 향해 운전하고 갔습니다. 기온은 무지 차..
여고 친구들의 모임이 내일 토요일로 다가왔다. 남편을 출근시켜주고 나서 친구집으로 가기로 했다. 모이는 친구는 나를 포함해 8명가량 될것 같다. 모두가 여고 시절, 학창시절 고향친구들이다. 남편의 차를 빌릴수 있을것 같아서 내가 집에서 잡채와 부침개 두세가지랑 식혜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
밤9시가 다된 시각에 빵이 먹고 싶어졌다. 밀가루 식품은 안 좋다고 하여 되도록 군거짓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하거니와 예전부터 좋아하지도 않아었다. 그런데 불현듯 먹고 싶다는 식탐을 버리지 못해서, 게으름에 무거워진 내 몸을 이끌고 일어나 단지 내 상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상..
친정에 다녀와서 몸살이 난건지 또 다시 쳇기 때문에 병원에 들러 위장약을 조제했다. 이 망할 만성적인 위염증상은 조금만 신경을 쓸 일이나 피곤하다 싶으면 바로 괴롭힌다. 명치끝을 누르면 찌르르 하는 그 아픔, 그리고 토할것 같은 구토증상과 만성적인 어지럼증은 요 몇년동안 나와 친숙한 증상..